업계가 자초한 '리스크'... 각자도생 서둘러야
만시지탄... 창고면적 재 규제는 아주 헛된 일
창고면적 80평 규제, 50평으로 완화... 결국 자승자박

올해 1월초 공급내역 보고대상 의약품 도매유통업체는 무려 3388곳에 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완제의약품 유통정보 통계집에 따르면, 작년 초 3170곳보다 218곳 증가됐다. 2020년 220곳, 2019년 273곳, 2018년 261곳 불어났다. 2001년 도매유통업체는 782곳 있었다. 

최근 4~5년 동안 줄곧, 3일마다 평균 2곳 안팎 의약품도매업체가 새로 생겨난 셈이다. 이러한 추세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 50~60세 무렵 제약사를 퇴직하는 유능한 의약품 영업전문가들 중, 100세 시대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도매유통업계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대로면 4년 후 2026년 4000여 곳, 8~9년 후 2030년 5000여 곳이나 될 것이다. 언젠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분명 찾아 올 텐데 말이다.

이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한국적 특수 상황이다. 의약품산업 선진국들 사례와 완전히 역행하는 모습이다. 일본의 경우, 1973년 의약품도매업체가 797곳(본점)이나 됐지만 2019년 61곳으로 감소됐다(藥事ハンドブック, じほう社).

문제는, 2001년 창고 실면적 80평 이상의 규제가 철폐된 이후 지금까지 늘어난 2606곳(2022년 3388곳-2001년 782곳)의 도매유통사들이 대부분 생계형 기업체라는 점이다.

2020년, 1억 원 미만의 매출액을 올린 도매유통사가 205곳, 1억 원에서 5억 원 미만의 도매유통사가 450곳, 5억 원에서 10억 원 올린 업체가 343곳 등 매출액 50억 원 미만 도매유통사들이 2247곳이나 됐다. 2020년 말 전체 업체 3107곳 중 71%나 된다.

 

폐업(도산) 사태없이 무탈하게 함께 먹고 살아 갈 수 있을까? 

의약품 도매유통 시장이 견딜 수 있는 업체 수의 한계치를 넘으면 화산이 폭발하듯 폐업의 불덩이가 사방으로 튀길 건 분명하다. 머잖아 그날이 다가올 것 같다.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의 역사를 보면 그동안 ▲1970년 전후와 ▲1995년 전후 ▲2014년 전후, 3차례의 큰 폐업ㆍ도산 사태가 발생했다. 

부도ㆍ폐업 사태가 반복되는 주기적 파동 기간을 분석해 보면, 1945년 해방 25년 후 1970년 전후해서 첫 번째 사태가 발생됐고, 두 번째는 그 25년 후 1995년 전후에 발생됐지만, 세 번째 사태는 앞서보다 6년 짧아진 19년 만인 2014년 전후에 일어났다. 

그 단축 기간과 현재의 업체 수 증가 속도로 볼 때 네 번째 사태의 회오리는, 세 번째 사태로부터 6년 짧아진 13년 정도 후인 2027년 전후해서 불어 닥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실면적 80평(임차면적 약 120여 평) 이상이었던 의약품 도매유통사에 대한 창고 바닥면적 규제가, 도매업계의 아우성과 민원에 의해 2001년부터 폐지됐다. 창고면적 규제가 존재했던 1994년 도매유통사는 487곳이었고 2000년에는 531곳으로 만6년 동안 44곳밖에 증가하지 않았으나, 창고면적 규제가 풀린 2001년 한 해 동안 도매유통사가 무려 251곳이나 늘어나며 일거에 782곳으로 급증됐다. 2003년에 벌써 1030곳, 2008년에는 1383곳을 넘어섰다. 

도매유통업체들의 난립은 업계의 영세성 심화와 불법 리베이트 만연 등 제반 유통 문제들을 불러들였고 이 문제는 국회로까지 번졌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의원입법(당시 원희목 의원 대표발의)을 통해, 2011년3월30일 창고면적 80평 규제가 부활됐다. 이 규제는 신규 업체의 경우 1년 유예기간이 지난 2012년3월31일부터, 기존 업체에는 그로부터 2년 후인 2014년3월31일부터 시행됐다.

당시 법안을 대표 발의한 원희목 의원(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창고면적 부활로 도매업체의 난립을 예방하고 시장 질서를 확립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국회 본회의 통과에 환영의 뜻을 표한바 있다. 

빽빽하게 들어찬 콩나물시루 같은 오늘의 도매유통업체 난립 사태를 보면, 당시 원희목 의원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는 당시 누구도 그런 예견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창고면적 재 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그를 다시 철폐하기 위해 업계와 도매협회(현, 유통협회)가 함께 동분서주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2012년10월5일 모모 도매유통사들의 대표자들(청구인들)이 창고 실면적 80평 이상의 재(再)규제에 대해,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중소기업 보호·육성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2012헌마811). 

헌법재판소는 2014년4월24일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창고 실면적 재규제 조항인) "약사법 제45조 제2항 제2호 및 부칙 제5조가 청구인들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중소기업 보호·육성의 의무도 위반하지 않는다"며 이 심판청구를 기각한바 있다.

도매협회(현, 유통협회)는 어렵사리 마련된 80평 재 규제가 시행(2014년3월31일)되기도 전에 그 규제를 다시 완화시켜 달라고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 결과 당시 국회 최동익 의원이 창고 실면적 50평 이상으로 완화시키는 약사법 개정(안)을 2014년1월22일 대표 발의했고 후속 절차를 거쳐 이 개정(안)이 2015년1월18일부로 공포ㆍ시행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 초 의약품 도매유통사들이 3388곳으로 폭증ㆍ난립된 주된 원인을 정리해 보면, ▲도매유통사들에게 부여된 창고 실면적 80평 이상의 의무적 규제가 2001년부터 철폐됐다는 점 ▲그 후 업체 수 증가속도와 폭이 너무 빠르고 커 이 문제를 인식한 국회가 의원 입법을 통해 다시 80평 이상으로 재 규제한 것을 절대 다수의 생계형 도매유통사들의 강력한 대폭 완화 요구로 국회와 정부 및 도매협회(협, 유통협회)가 합작하여 다시 50평으로 완화시켰다는 점 등, 2번의 기회 상실의 결과로 분석된다.

설상가상 위ㆍ수탁 공동물류 제도까지 본의 아니게 업체 수 증가를 촉진하고 있다. 공동물류 시 위탁자에 대한 KGSP 및 관리약사 채용 의무 면제가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업체 수 과밀은 경쟁 과열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초저가 낙찰 등 수익을 갉아먹는 가격경쟁과 수단ㆍ방법 가리지 않는 유통질서 문란이 불가피해, 생존의 조건인 매출액총이익과 영업이익 및 당기순이익 등이 필연적으로 낮아지게 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가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에서 되돌릴 수 없도록 고착돼 가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창고면적 규제 강화를 재논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창고 면적 철폐와 완화의 혜택을 받고 도매유통업계에 발을 디딘 절대 다수의 현 도매유통사들에게 재재(再再) 규제의 피해를 줄 수는 없을 테고, 60세 전후에 제약사를 퇴직한 후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에 새 삶을 꾸리기 위해 진입하고자 하는 수많은 분들에게도 기존의 도매유통사들과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 줘야 할 것 아니겠는가.

머지않은 어느 날, 초(超)과밀로 인한 시장 포화(飽和) 때문에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에 충격의 제4차 폐업(부도) 파고가 실제 밀어닥친다 해도, 그 모든 게 의약품 도매유통업계가 자초한 결과이므로 누굴 탓할 수는 없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경영 상태가 어려운 업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자연의 섭리라는 점을 유념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각자 도생의 길이 무엇인지 찾는 일이 급선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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