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용 요약

전체 위원 1/3 공익위원, 사실상 정부편...공정논의 불가능
준조세 성격 건보료를 정부선임 위원회에서 결정 '의문'
안건 대부분 가결...회의당 7~8쪽 결정내용만 공개돼
보건의료정책 업무 무경험 위원 대다수...침묵할 수 밖에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

국민건강보험은 건강보험의 중요한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둔다. 예를 들어 어떤 치료나 약의 건강보험적용 여부를 결정하고, 건강보험료, 의료수가, 건강보험 정책을 심의하기 위한 위원회이다. 

건정심은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의협, 병협, 한의협 등 의료 '공급자 대표' 8명과 경총, 양대노총, 자영업자 단체, 농어민 단체, 환자단체, 시민단체 등 '가입자 대표' 8명 그리고 공무원, 건강보험공단, 학자 등 '공익위원' 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기는 3년이지만 대부분은 지정된 단체에서 추천하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공급자 대표 전체, 공익대표 절반, 가입자 대표 절반은 사실상 바뀌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건정심은 2002년 의약분업 직후 건강보험재정 위기가 왔을 때 만들어졌지만 국민건강보험의 전신인 '의료보험'이 만들어졌던 1964년부터 '의료보험심의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그후 1999년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를 거쳐 현재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되었다. 

건정심 회의 장면.
건정심 회의 장면.

최근 3년간 회의 개최 현황을 보면 서면 회의를 포함해 연간 약 35회씩 열렸다. 월 3회 정도이니 자주 열리고 회의 안건이 많아 보통 장시간 진행된다. 

위에서 말한 바뀔 수 있는 가입자와 공익위원 절반은 보건복지부가 정한다. 특히 2010년에는 대대적인 위원 교체를 하여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2002년 진보정권에서 선임한 위원들을 보수정권에서 교체하면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건정심 위원 위촉 절차 취소 소송 등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다. 

2016년에도 일부 위원들이 교체되었으며 교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경총 등 사용자 단체'는 그대로 잔류시키면서 특정 단체만 교체하려는 것은 복지부의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걸었던 단체만을 교체하려는 보복성 조치’라며 반발하였다. 위원 선임은 전적으로 정부의 권한이라는 의미이다. 

건정심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결정은 의료 수가와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의료수가는 의협과 병협, 건강보험료는 온 국민들의 관심사가 된다. 

의협, 병협, 한의협, 치과의사협, 간호협, 제약산업협 등 여러 공급자 가운데 의료수가와 큰 관련이 있는 단체는 의협과 병협 뿐이다. 한의협과 치과협은 비급여 항목이 상대적으로 많고 간호협, 제약협은 직접 의료수가를 받는 단체는 아니다. 

특히 의협은 2003년 낮은 수가인상율에 반발해, 2012년 포괄수가제 도입에 반발해,  2018년 역시 낮은 수가 인상에 반발해 건정심 탈퇴를 선언했고 길게는 1년 6개월 간 건정심에 참여하지 않았다. 

의협은 의료수가 결정을 의료 공급자와 정부가 1:1로 하기를 원한다. 전체 위원의 1/3인 공익위원이 사실상 정부 편이고 가입자 단체 대표 다수를 정부가 임명하기 때문에 공정한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부가 임명하는 위원이 지속적으로 정부에 반하는 의견을 낸다면 3년 뒤 교체되지 않을까? 

2022년 건강보험료는 직장 가입자를 기준으로 급여의 6.99%이다. 이중 절반은 노동자, 절반은 사업주가 부담한다. 그리고 건강보험료의 12.27%를 장기요양보험료로 낸다.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합치면 급여의 7.85%이고 이것을 결정하는 곳이 바로 건정심이다.  

조세와 국민연금 보험료가 법 개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과 비교된다. 건강보험료가 소위 '준조세'인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선임한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위원들이 이런 논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결정 내용에 책임을 지는 지이다. 

2021년 국민건강보험은 국민건강보험 79조, 장기요양보험 11조 총 90조를 지출하였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90조원이나 이중 약 11조원은 정부가 건강보험재정에 지원하는 예산이다. 보건복지부가 쓰는 돈은 79조원. 건강보험재정은 보건복지부 예산 보다 많다. 

보건복지부는 기획재정부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하는 정부 부처이다. 보건복지부 예산 보다 큰 재정 결정을 우리가 잘 모르는 25명의 위원들이 정하고 있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내용 대부분은 당일 언론에 공개되며 며칠 뒤 속기록의 형태로 모든 국민에게 공개된다. 우리는 작은 노력만 하면 어느 국회의원이 어떤 안건에 어떤 주장과 의견을 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건정심은 회의당 7~8쪽의 결정 내용만 알 수 있고 각 위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건정심 안건의 대부분은 가결된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2021년 상반기에 열린 1~11차 회의 내용을 보면 부결된 안건이 없다. 부결은 매우 드물어서 의료전문지에서 주요 뉴스로 보도되지만 종합 뉴스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미 회의 전에 충분히 논의되어서일 수도 있지만 의협 등에서 건정심이 정부의 들러리라고 지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건정심은 매우 중요한 위원회이기 때문에 위원들을 직접 인터뷰한 연구들도 여럿 있다. 이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책임성, 중립성, 전문성을 지적하고 있다.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 처럼 국회의 추천으로 임명하는 것도 방법이다.  건강보험이 정치화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이미 건강보험의 주요 이슈는 정치적이다. 사실상 국회에서 임명한다면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건정심에서는 지금껏 잘못된 결정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례가 없다. 국회 상임위와 마찬가지로 회의록을 공개할 필요도 있다. 

정부가 결정내리기 부담스러운 안건을 건정심에 책임을 넘긴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형태가 건정심 뿐은 아니다. 사용자, 근로자, 공익위원 각각 9명과 특별위원 3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도 역시 정부의 들러리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나마 이곳은 안건이 최저임금 하나 뿐이니 사정이 낫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거대 양당 모두 가장 중요한 보건의료 공약으로 내세운 고가 항암제/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급여화도 건정심에서 결정한다. 그 어떤 사람도 항암제들의 효능, 효과, 부작용, 경제성, 사회적 필요성을 모두 알 수 없다. 암질환심의위원회 등의 전문 위원회의 결정을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제약회사가 수 십년 동안 개발하고 수 많은 환자들이 목숨을 걸고 기다리는 약제의 급여가 이런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는 것을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을 모를 것이다. 

2017년 한 연구에서는 특히 가입자 단체 대표들의 전문성을 지적하였다. 가입자 단체 대표들이 직접 '당시 가입자 대표 중 건정심 참여 이전에 보건의료정책관련 업무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한 명 뿐'이며 대다수 참석자들이 회의 과정에서 '침묵을 지키거나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고 인터뷰하였다.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제안한 것이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두자는 것이었다. 

건정심은 보안을 이유로 회의 안건을 사전에 공유하지 않는다. 일러야 전날, 보통은 당일 몇 시간 전에 회의자료를 공유한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모든 내용을 숙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보건의료학자인 위원이라고 해도 건정심에서 논의되는 내용 대부분은 자신의 비전문분야일 수 밖에 없다. 정부 예산 1/7 규모의 재정을 ‘비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참고자료

ㆍ2021.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윤구현 발표 슬라이드.

ㆍ보건복지부. 2021년 제1차~11차 건정심 회의내용(홈페이지).

ㆍ정형준. 건강보험 거버넌스 개편 - 가입자 중심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이슈페이퍼. 2018.

ㆍ김창엽 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가입자 단체의 의사결정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보건행정학회지. 2017.

ㆍ신영석 외. 건강보험 의사결정기구의 개편 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4.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