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기울어진 운동장에 선 K바이오벤처 사람들

잭팟을 노래하며, 국내 바이오벤처의 미래를 찬양하던 언론들이 바이오벤처 몇 곳의 IPO가 막힌 것을 계기로 이 모양 저 모양의 깊은 절망감을 토해 놓고 있다. 일희일비, 한동안 잠잠하던 고질병이 도졌다. 이 고질병은 도전과 모험, 장기간에 걸친 고비용을 감당하고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신약개발 분야에서 고군분투 중인 이들의 기운을 빼는 것도 모자라, 바이오 생태계 전반의 분위기를 침체시키는 기폭제 노릇을 하며 산업계의 꿈을 약화시킨다. 부화 중인 계란을 자주 꺼내 불빛에 비춰보고 흔들면 안 되는 것처럼 혁신 신약개발 분야에 대한 관찰과 평가도 담담해 질 필요가 있다.

이처럼 침울한 분위기를 뚫고, K제약바이오 생태계의 희망을 상징하는 바이오코리아2022(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최)가 개막한 11일 저녁,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김용주 대표를 현장 근처에서 우연히 만났다. 역할은 다를 지언정 같은 업계에 종사하다보니 결국 바이오 생태계를 주제로 예정에 없던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날은 김용주 대표가 자신의 주식을 담보로 5억원을 차입해 자사주를 매입한 날이기도 했다. 국내 현실에서 대표이사의 자사주 매입은 '대표가 곁눈질 없이 회사를 이끌어가다 잘못되면 함께 장렬하게 순장하겠다'는 비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투자자의 마음을 얻고 흔들림없이 사업 목표를 향해 질주하겠다는 강렬한 약속이다.

레이저 눈 빛으로 직시하며 그는 피끓는 연설을 시작했다. 주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악전고투 중인 바이오벤처의 딱한 처지'였다. "미국에선 IPO가 자유로운 편이며, 액시트 플랜 가운데 하나로 M&A도 활발한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 누가, 누구를 인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기존 제약회사 등 그나마 덩치 큰 곳이 바이오벤처를 껴안아줘야 하지만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바이오벤처가 자금을 확보해 신약개발을 촉진하는 선순환 출구는 IPO 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 마저 막히면 다 죽으라는 얘기나 다르지 않다. "

"생태계가 나빠지면 신약개발의 꿈은 흐릿해 질 수 밖에 없다"고 안타까워 한 그는 상장 바이오벤처사의 공통 어려움을 이야기 했다. "좀 나아졌다지만 자본시장은 일반기업들처럼 벤처기업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매출이 얼마냐, 적자가 이렇게 큰 이유가 뭐냐 추궁한다. 실은 저희도 작년에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작년 R&D에 오백 몇십억을 썼고, 올해도 한 구 백억 이상 들어갈 것이다. 임상 들어가면 돈들어 가는 게 장난 아니다. 바이오벤처는 다 매출 기준 몇 십배, 아니 몇 백배 R&D 비용을 쓴다. 매출까지 걱정하랴, R&D하랴 바이오벤처는 죽을 맛이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생태계가 혁신신약,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꿈을 내려 놓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생태계가 혁신신약,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꿈을 내려 놓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맞다. 바이오벤처는 상장사든, 비사장사든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긴 매한가지다. 기술과 돈이 만나 스타트업으로 태어나면, 길은 하나다. 시리즈 A, B, C로 자금을 모아 신약개발 단계를 높이며 IPO에 이르는 길에서 기술 수출과 같은 '행운 어린 출구'를 찾지 못하면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한다. 좀비가 되기 십상이다. 설령 IPO에 성공한다 해도 잠깐의 기쁨만 허락된다. 확보된 자금 범위 안에서 드라마틱하게 임상개발에 성공하지 못하면 고통은 또 온다. 주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상증자도 한계가 있다. 관리 종목에 오르지 않도록 매출 증명하랴, 신통한 결과를 다그치는 투자자들에게 시달리랴, 기업은 괴롭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IPO도 감옥이다.

신약개발이 매력적이면서도 위험성이 큰 것은 '승자독식 게임'이라는데 있다. 맹수같은 경쟁자들이 드글드글한 글로벌 영토에서 정확한 길을 신속하게 통과해야 '피자 한판'을 독차지 할 수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성공에는 피자 한조각, 두 조각 돌아가기 힘들다. 물론 베스트 인 클래스나 출시 후 마케팅에서 뒤 엎은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해도 경쟁자보다 하루라도 먼저 전임상 시험을 해야하고, 반나절이라도 임상시험에 이르게 진입해야 기술수출이든, 혁신신약 완성품 출시 등 승률이 높아진다.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 떨어져야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적절한 시점에서 돈의 투입이 제일 중요하다.

제약바이오생태계, 즉 '혁신 신약개발산업 생태계'는 홀로 구축될 수 없다. 자연생태계에 '물과 공기와 바람, 참나무와 다람쥐, 꽃과 나비' 등이 필요한 것처럼 혁신 신약개발산업 생태계가 풍요롭게 형성돼 이런 저런 꽃을 피우려면 '열망을 지닌 사람들(연구자, CEO, CFO, CSO, CMO, 제네럴리스트 등), 남다른 기술, 메이드 인 혁신신약의 꿈을 공유하는 금융(돈), 혁신신약 개발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담담할 수 밖에 없는 언론 등의 역할에 맞는 긍정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LG화학(23년 근무)에서 시작해 레고켐까지 40년 가까이 신약개발에 도전하며 다국적 기업 상대로 기술수출을 했다가 엎어지는 아픔을 포함해 12개 프로젝트를 실패했으나 스스로를 "신약개발을 하다가 미친 놈"이라고 말하는 김용주 대표는 "신약 기술식민지를 벗어나려면 미쳐 버리지 않고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며 이야기를 마쳤다. 레고켐은 올해 3월 자체개발 ADC플랫폼 기술기반 글로벌 신약개발을 위해 자회사로 설립한 보스톤 현지법인 'AntibodyChem Biosciences(ACB)'을 가동해 독자적인 임상개발에 나선다. 그와 그의 신약개발 철학을 공유하는 임직원들은 어려움을 당연시하며 국내 바이오벤처 최전선에서 달리고 있다.

우리는 다같이 혁신신약에 대한 꿈을 키워야 한다. 삼성, SK, OCI, 한화, 롯데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바이오산업계 투자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신약개발 분야는 투자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K혁신 신약개발산업 생태계'에 살면서 '신약을 붙잡고 발버둥치는 수많은 김용주들의 푸른 꿈들'이 있다. 과연 한국 선수가 EPL에서 뛰는 날이 오겠냐던 의구심이 어제인듯한데, 손홍민이라는 득점왕까지 나왔다. 우리나라 바이오벤처들 가운데 '스텔스 길리어드나 바이오엔텍'이 없을 수 없다. 믿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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